살아가는 이야기
STL을 사용하지 않으면 C++를 사용하는 재미가 반감된다. 그러니까 C++를 알면서도 STL을 아직 써 보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 보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다음 사이트의 예제 몇 개를 사용해 보면 된다. 친절하게도 예제 코드가 있으니 copy-paste로 STL을 맛볼 수 있다. C++ STL Tutorial and Examples
웹을 돌아다니다가 어셈블리어에 관한 자료를 모아 둔 사이트를 찾았다. 혹시 나중에 도움이 될까 하여 북마크에 기록해 두었는데, 또 몰라서 여기에 링크를 걸어 둔다. ASM Community (http://www.asmcommunity.net/)
filetype 키워드를 이용하면 원하는 타입의 파일만 검색할 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filetype:pdf KCC 이렇게 할 수 있다. 또 site 라는 키워드도 있다. 예컨대 site:ac.kr list 라고 하면 국내 학교의 모든 list를 검색한다.
'빈센트(Vincent)'라는 노래가 있다. 대학 2학년 때 처음 들었던 노래인데, 잔잔한 선율이 인상적인 노래였다. 고흐와 관련된 노래라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다. 웹에서 노래 가사를 구했다. Vincent, Don McLean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e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Now I ..
내 컴퓨터가 사라졌어요. 내 컴퓨터가 사라졌는데 어떻게 이 글을 쓰고 있냐고요? 내 컴퓨터 안에 있는 내 컴퓨터 말이에요. 그게 사라졌다고요.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윈도우즈를 써 본 사람이라면 다 알아들을 것이다. 처음 윈도우즈를 설치하면 바탕화면에 '내 컴퓨터' 아이콘이 있다. 오랫동안 윈도우즈를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것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누가 지웠는지 모르지만 내 컴퓨터도 내 컴퓨터가 사라진 경우가 있었다. 이것을 나타나게 하려면 바탕화면에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클릭한 후 '속성(R)' 메뉴를 누르면 된다. 그럼 '디스플레이 등록 정보'라는 대화 창이 나타나는데, 여기서 두 번 째 탭의 맨 아래 '바탕 화면 사용자 지정(D)...'(아래 그림 노란 단추)를 누르는 것이 관건이다. 그럼..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쳇바퀴 돌 듯 끝이 없는 방황에 오늘도 매달려 가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겉으론 감추며 한숨 섞인 말 한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 있는 듯 이제 와 뒤 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 가리
언젠가부터 gvim 색깔이 이상하게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실행한 후에 :color default 명령어를 사용하거나 :highlight clear 명령어를 사용하면 기본 색상으로 바꿀 수 있었지만, 매번 이것을 지정해 주는 것이 정말 귀찮았다. Vim 설치 폴더의 _vimrc를 바꿔 보기도 하고 gvimrc_example.vim을 Vim 설치 폴더에 _gvimrc로 복사하여 바꿔 보기도 했지만, 도통 색을 바꿀 수가 없었다. :version 명령어를 수행하니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나왔다. 시스템 vimrc 파일: "$VIM\vimrc" 사용자 vimrc 파일: "$HOME\_vimrc" 사용자 두 번째 vimrc 파일: "$VIM\_vimrc" 사용자 exrc 파일: "$HOME\_exrc" 사용자 ..
내겐 큰아버지가 두 분 계셨다.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다. 두 분 큰 아버지 중에서 형님되시는 분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6.25 사변 때 818 고지에서 전사하셨다. 우리 아버지는 그 때 고등학교 졸업반이셨다고 한다. 야간 대학에 합격하셨지만, 집안 사정상 입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힘들어서 입학을 포기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큰아버지 전사 위로금이 그 때 지급되었다. 그래서 전사 위로금으로 입학금을 충당하실 수 있었다. 물론 대학에 입학하신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대학을 다니셨다. 전사 위로금은 입학금 정도만 충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부고속도록 놓는 공사가 있었는데, 여기 일꾼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시기도 했고 풀빵장사를 하시기도 했다. 큰아버지는 살아 계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