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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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생활: 학부모 컨퍼런스

우균 2009. 10. 29. 01:38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글을 써야지.' 생각하면서도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어렵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쁜 것 같다. 아이들 학교에 신경쓰는 일도 우리나라보다 많은 것 같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도 많고, 방과후 운동이라도 한두 개 하려면 일일이 차로 데려다 줘야 한다.

어제는 초등학교에서 컨퍼런스가 있다고 해서 다녀 왔다. 컨퍼런스라고 하면 무슨 학술대회인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은 그냥 면담시간이다. 담임 선생님과 부모가 만나서 우리 애가 잘 하고 있는지 아닌지 면담을 하는 것이다. 중학교부터는 담임 선생님이 없기 때문에 컨퍼런스를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에는 컨퍼런스가 필수인 것 같다.

컨퍼런스 기간 동안에는 아이들도 일찍 하교한다. 평소엔 오후 3시쯤 끝나지만, 컨퍼런스 기간에는 정오 근처에 끝난다. 그리고 오후 시간에는 한 부모당 30분 정도씩 시간을 할애하여 면담 일정을 잡고 진행한다. 물론 30분이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고 모자랄 수도 있다. 모자라는 경우에는 다음에 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시간 안에 끝낸다.

이런 컨퍼런스를 학기당 1회 이상 진행하는 것 같다. 그리고 면담 때 아이들의 성적이나 태도 등을 얘기해 준다. 어떤 부분을 잘 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얘기한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원하지 않아도 이 면담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학부모 교육열은 매우 높지만 나는 정작 이런 면담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에 가서 면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선생님들을 신뢰한다는 말이 되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무관심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미국 사회는 불신이 기반이 된 사회라고 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시스템과 법제도가 갖추어 졌다고 한다. 컨퍼런스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이 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나 '직접 확인'하라는 것이고, 거꾸로 선생님 입장에서는 학기가 끝난 후에 부모가 다른 말을 하지 못하도록 미리 '약을 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국이 가진 힘은 무엇일까? 안정적인 시스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법규나 제도가 생기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생겨나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예측 가능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그런 시스템이 '불신'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참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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