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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가 혼난 사연

우균 2010. 1. 3. 01:13
옛날에 마음씨 착한 농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논 석 냥을 들고 마을 장에 가고 있었어. 돈 석 냥은 당시에 꽤 큰 돈이었지. 그런데 갑자기 농부 앞에 도깨비가 나타난거야. 말 그대로 낮도깨비였지. 도깨비는 급하게 쓸 데가 있다면서 돈 석 냥만 빌려달라고 사정사정을 하더래. 내일이 되면 꼭 갚겠다고 말이야. 도깨비가 돈을 빌려달라니 황당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해서 이 농부는 돈을 빌려줬어. 그리고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왔지.

다음날 어제 그 도깨비가 농부에게 나타나서 돈 석 냥을 주더라는 거야. 아주 고맙다는 말과 더불어 말이야.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어. 도깨비가 건망증이 있었는지 그 다음날에도 또 나타났어. 농부는 어제 갚았다고 했지만 도깨비는 완강하게 아니라고 하면서, 나중에는 화를 내는 것 아니겠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또 석 냥을 받고, 또 석 냥을 받고... 그러다 보니 도깨비와 친해지게 되었어.

계속 도깨비가 찾아오던 어느 날,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농부는 지짐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려고 하고 있었어. 마침 그 때, 도깨비가 찾아와서 술 한잔 같이 하자고 했지. 도깨비도 '좋아라'하며 같이 술을 마셨어. 그런데 술 주전자가 너무 낡았다는 거야. 그러면서 자기 집에 주전자가 많은데 '하나 가져다 줄까?' 하더래. 농부는 좋다고 했지.

그랬더니 다음날, 한 손에는 석 냥, 다른 손에는 주전자를 들고 도깨비가 나타났어. 문제는 그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계속계속 주전자를 가지고 오는 거야. 마당 한 구석에는 주전자가 엄청 많이 쌓이기 시작했어. 그래도 아랑곳없이 계속 주전자를 들고 오는 거지.

그러던 어느 날, 농부가 다듬이질을 하고 있는데 도깨비가 찾아왔대. 그러더니 방망이가 너무 낡았다는 거야. 그리고 하는 말이, 자기 동네에 방망이가 많은데 하나 가져다 주겠다고 하더라고. 농부는 지금까지 도깨비가 한 일을 생각하고 괜찮다고 했어. 그런데 궂이 가져다 주겠다는 거야.

다음날 도깨비는, 한 손에는 석 냥, 다른 손에는 주전자, 등에는 방망이를 메고 나타났어. 그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계속되었지. 마당 한 구석에 주전자와 방망이가 계속 쌓이고 있는데도 말이야.

어느 날, 도깨비는 와서 '내일은 도깨비 이장님께 혼난다'고 하지 뭐야. 왜 그러냐고 하니, 이상하게 도깨비 마을에 주전자와 방망이가 동났대. 그리고 그것 때문에 도깨비가 혼나야 한다고 하지 뭐야. 농부가 마당에 쌓인 주전자와 방망이를 가리키며 내가 좀 주겠다고 했지. 그런데 도깨비는 '그럴 순 없다'고 하면서 그냥 갔어. 그 다음부터 도깨비는 농부를 찾아오지 않았어. 아마 찾아오고 싶어도 오지 못했을거야. 농부는 요즘에도 비가 오는 날이면 도깨비를 생각하며 막걸리를 마시곤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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