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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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망가지는가?

우균 2017. 3. 10. 12:34

사랑에 가득 차 태어난 사람이 왜 자라면서 분노와 우울 속에 살게 되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품고 태어난다. 우리는 통상 부모의 사랑의 얘기하지만 실상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식이 부모를 더 사랑하고 신뢰한다고 한다. 갓 태어난 오리가 처음 만난 대상을 엄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도 어렸을 때는 만남의 바탕이 사람에 대한 신뢰였다.

사람이 망가지는 원인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상실의 시대'라고 번역된 '노르웨이의 숲'이란 소설의 주제는 '상실과 고독'이다. 믿는 것을 밑바탕으로 하던 우리가, 자라면서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다. 확실하다던 사람이 도주하고 이렇게 하겠다던 사람이 배신하고 '그런 놈들 대신 나'라던 사람이 사기꾼으로 밝혀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 속의 규칙이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불신의 대가는 크다.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서류를 남겨야 하고, 인감, 서명도 모자라서 지장을 찍어야 하며 심지어 보증인을 세워야 한다. 이런 시스템을 탓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회에도 최소한의 안전 장치가 필요하니까.... 그러나 이러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가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것이 문제이다. 공무 출장으로 해외 학회를 다녀온 근거 자료로서 비행기표를 제출하도록 할 수 있다. 출입국 사실 조회 증명서까지도 이해는 안 되지만 이해한다고 치자. 하지만 마일리지 제출까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혹자는 말한다. 그것은 불신해서가 아니라 효율성 때문이라고.... 마일리지를 모아서 향후 출장갈 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사용한 사례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10여년 전에 에어프랑스로 해외 학회에 다녀온 후에 마일리지가 얼마인지 찾기 위해서 인천 공항에 사무실도 없는 에어프랑스 창구를 찾아 헤맨 이후로, 난 국외 여행은 왠만하면 하지 않게 되었다. 하더라도 마일리지가 없는 표를 찾게 되었다. 이게 불신의 댓가다.

효율성도 좋지만 효율성이 인간성을 짓밟아버리는 점 또한 묵과하기 어렵다. 세상에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하지만 효율성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같다고 가정한다. 같은 잣대로 사람들을 측정하고 그 결과를 성과라고 포장하며 그에 대해 돈을 지불한다. 사람의 가치에 가격을 붙이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당연한 것 아니냐고? 천만에! 도대체 경제가 어렵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으론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경제라는 개념을 알게 된 이후로 경제는 항상 어려웠다.

열심히 일한 분에게 성의를 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것도 고마움의 표시가 먼저가 되어야 한다. 돈은 맨 나중에 면구스럽게 드려야 하는 것이다. 불길과 싸우다 돌아가신 소방관에게 사망 보상금 드렸으니 다 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면 정말 곤란하다. 나라를 지키다 부상당한 분들, 돌아가신 분들께 훈장 주고 돈 줬으니 할 도리 다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파렴치한 것이다. 그분들의 생명이 대체 그 알량한 돈으로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성과급이란 이름으로 우린 인간성을 말살하고 있다. 사실 성과급은 성과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가 바뀐 형태다. 그러나 이제 고마움은 전혀 없다. 공무원 사회에서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는 성과급은 심지어 다른 사람이 받을 돈을 빼앗아 잘 한 사람에게 주는 형태다. 유사 이래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형태의 성과급인 것이다. 빼앗긴 사람에게 고마움을 기대하는 것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받은 사람도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 구성원 모두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악랄한 규정이다. 

우린 인간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이는 우리 자신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우리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 후손들에게 이런 사회를 물려줘야 하겠는가? 사람은 본래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네 방향을 두루 돌아봐야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신뢰의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며 아픈 마음은 다독여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그런 세상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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