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14610 본문

살아가는 이야기

14610

우균 2008. 8. 25. 23:21
열 살 때, 내 동생 연희가 같은 학교로 입학했다. 입학식 때는 아버지가 오셨지만, 그 전에 예비소집할 때는 부모님이 모두 오시지 못해서 내가 동생을 마중나가야 했던 것 같다. 정확히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그 때 담임 선생님께 사정 얘기를 하고 청소에 빠지고 운동장으로 나갔던 것 같다. 초등학교 삼학년 담임 선생님 성함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 뚱뚱한 분이셨는데, 운동장에서 동생이 어디로 모이는지 몰라서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짜증을 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에 동생을 어떻게 만나고 일을 끝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잘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잘 만나서 잘 끝냈던 것 같다.

스무 살 때, 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집에서 떨어진 곳이라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하루 일찍 기숙사에 와서 사감 선생님이 난감해 했었다. 어머니와 동생, 사촌동생이 함께 왔었는데 어머니는 오후 세 시 정도까지 계시다가 동생들과 함께 집으로 가셨다. 네 명이 함께 자는 기숙사였는데, 그 방에서 나는 그 날 혼자 잤다. 자기 전에 집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내가 여기 와서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상하게도 전혀 무섭지는 않았다. 그 후 한참동안 향수병에 시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잠도 많이 못 잤고(그래도 지금보단 많이 잤겠지만) 음식도 잘 못 먹었다. 그래서 몸도 많이 야위었다. 그래도 공부는 참 열심히 했다. 기특하게도...

서른 살 가을, 지금 아내와 결혼했다. 처음 하는 결혼이라 여러 가지로 서툴렀다. 지금도 아내는 결혼식 전후 서운했던 것을 가끔 얘기하곤 한다. '처음 하는 결혼인데, 매끄럽게 할 수 있나? 매끄럽게 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지.'라고 얘기하고 싶다가도 그냥 참고 지낸다.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고나 할까. 결혼식이 있던 그 가을에 학부 내 지도교수님은 해외 연구년을 가셨고 대학원 지도교수님은 결혼식에 참석해 주셨다. 그 때 그 고마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결혼식 때 계셨던 고모부는 지금 돌아가셨다.

마흔 살, 봐서는 안 될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염치 없는 사람들, 정치적인 사람들, 그런 사람을 떠 받드는 사람들, 그런 모습을 동경하는 사람들, 거짓을 진리인 양 포장하는 사람들, 밥 먹듯이 거짓말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우두머리가 되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이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생각하니 한숨뿐이다. 그러나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판도라에게 남겨진 마지막 선물이 있으니까. 우두머리라고 해 봐야 큰 트리의 노드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오늘.
14610일을 살았다.
오늘이 가기 전에 글을 쓰고 싶었다.
그냥 그뿐이다.
그저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