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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편집위원

우균 2010. 8. 10. 11:39
지난해 11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국내 학회에 논문을 투고했다. 논문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나름대로 아이디어도 있고 결과도 있는 논문이었다. 심사 기간이 꽤 걸렸다. 세 달 정도 심사에 소요되었지만, 이런 경우는 흔한 일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 달 정도 후에 나온 심사 결과, 좋은 결과가 나왔다. 모든 심사위원이 게재 가능이라고 심사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어떤 편집위원의 어깃장은 시작되었다. 심사 결과는 잘 나왔지만, 논문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금 상태로는 게재하기 어려우니 제목을 바꾸고 논문의 일부 내용을 변경하라고 요구하였다. 편집위원의 판단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심사서를 통해 이런 요구를 한 것도 아니고 답변서를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또 빨리 논문을 게재하려면 다른 방법은 없었기에 이렇게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수정하고 제출하는 데 보름 정도 지난 것 같다. 그리고 또 두 달이 지났다.

이번에는 편집위원회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편집위원회에서 논문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에 게재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기다려 보라고 했다. 이미 해가 바뀌어 넉 달만 지나면 투고 후 일년이 지날 판이었다. 나도 편집위원회에서 일을 해 봐서 알고 있지만, 편집위원회에서는 담당 편집위원의 언급이 가장 영향력이 있다. 그러므로 편집위원회에서 논문 문제가 거론되었다는 것은 담당 편집위원이 그것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며 편집위원회 문제를 얘기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지 질을 높이기 위해서, 또 좋은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서 엄밀히 심사한다는 취지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해를 넘겨가며 엄밀히 심사한 다음, 다른 논문지에 투고할 기회까지 뺏으면서 이렇게 어깃장을 놓는 것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도 오래 기다리다 보니 편집위원이 논문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게 편집위원과 씨름하는 동안, 그 보다 늦게 논문을 투고한 국제 학회에서도 연락이 왔다. 편집자 메일에는 심사가 늦어 미안하다며, 그 사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편집자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내가 오히려 고마웠다. 이런 고마운 마음이 들면, 논문 수정에 한층 더 공을 들이기 마련이다. 지금은 심사위원들이 지적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문제가 없는지 다시 읽어보고 있다.

앞서 얘기했던, 이상한 편집위원이 있는 학회로 돌아가 보자. 이 학회는 내가 과거 논문지 심사도 여러 차례 했고, 논문지 편집위원도 몇 해 담당했고, 또 현재까지 내가 종신회원으로 있는 학회다. 그러나 이런 일을 겪고 나니 학회 자체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런 편집위원을 두고 논문지를 내는 학회가 과연 좋은 학회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학회를 위해 논문을 내고, 심사하고, 일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간단히 생각하면 편집위원 한 사람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하나 때문에 학회가 평가될 수도 있다는 점, 논문지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는 점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내게 가장 괴로웠던 점은 무엇보다도 논문을 같이 작업했던 학생들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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