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뒤란에서 멱감기 본문
어렸을 때 외가에 가면 뒤란에서 멱감곤 했었다. 큰 고무대야에 지하수를 받아 놓고 물놀이를 하다 보면 뼛속까지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외가댁에는 자동펌프가 있어서 지하수를 쓰는 것이 꽤 편리했다. '뒤란에서 멱감을래'하고 자주 말씀하시던 외할머니 덕분에 나는 '뒤란'이 표준말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뒤란'은 '뒤 울 안'의 평안도 사투리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외할머니는 고향이 이북이셨다. 평생 고향에 가 보시지도 못하고 지금은 병상에 누워 계신다. 몇 년 전만 해도 '혹시 통일이 되지 않을까'하는 희망에 부풀었었지만, 지금 정세를 보면 아무래도 가까운 시기엔 어렵지 않나 싶다. 이제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외삼촌도 돌아가시고, 이제 혼자 남으셔서 쓸쓸히 누워 계신다. 어려서는 부모, 결혼 후에는 남편, 나이 들어서는 자식을 바라보는 것이 여자의 일생이라지만, 병상에 누워 계신 것을 보니 인생무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금할 수 없다.
문득 뒤란에서 시원하게 멱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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