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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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신들린 강의

우균 2008. 5. 14. 14:22

전공 강의를 하다 보면 마치 신들린 듯이 강의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강의하는 주체는 분명 물리적으로 '나'지만,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강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 그런 경우가 있다.

이런 강의를 할 때면, 두 가지 센서가 마비된다. 하나는 시간 감각이며 다른 하나는 평형 감각이다. 시간 감각이 마비된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에 둔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분명 한 시간이 흘렀지만 마치 십여분 정도가 흐른 느낌 같은 것.

평형 감각이 마비된다는 것은 내가 말하는 사람이고 학생들이 듣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본디 내가 강의하러 왔고 학생들은 지식을 들으러 왔지만, 강의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나도 학생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는 다만 학생들과 같은 선상에서 강의하는 사람이 내뱉는 말을 설명해 줄 뿐이다.

신들린 강의를 항상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 그랬다면 지금쯤 계룡산 자락에서 돗자리를 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가끔 이런 강의를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강의를 마친 후에는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고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피로를 함께 느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매우 뿌듯하고 피곤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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