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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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연구의 시작

우균 2016. 4. 20. 07:27

1990년대 중반, 대학원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박사과정 재학 중이었는데 도무지 연구에 진척이 없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소소한 기쁨 중 하나가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선후배와 얘기하던 것이었다. 어느날 문득 실험실 선배가 커피를 마시다가 물었다.

"연구의 시작이 뭔지 아니?"

나는 속으로 '매일 논문 보고 코딩하고, 보고서 쓰고 이런 것이 연구 아니었나?'하는 생각에 별 생각 없이 답했다.

"논문 보는 것 아닌가요?"

선배 대답은 의외였고 간단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 근데 내 생각에는 책을 찾아 보는 것 같아."

"책이요?"

정말 황당한 말이었다. 책은 항상 보던 것 아닌가? 그리고 최신 연구 결과는 책보다는 논문에 더 많은데... 그것도 저널 논문보다는 학술대회(컨퍼런스) 논문에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선배는 계속 얘기했다.

"그래 책. 있잖아, 책을 찾아서 읽어 본 적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사실 내가 찾아서 읽은 책을 생각해 보니 그다지 많지 않더라구. 지금까지 읽으라는 책만 읽었지. 교과서, 학교 추천도서, 유명한 책들..."

문구 그대로 옮길 순 없지만 대략 이런 느낌의 대화였다. 선배는 계속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책을 찾아보게 되더라구. 수동적 독자였던 내가 능동적인 독자가 될 때, 그 때 연구가 시작되는 것 같아. 정말 필요해서 책을 보는 거지. 책의 한 부분이라도, 한 문구라도 보기 위해서 책을 찾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이 연구의 시작인 것 같아."

그 때는 뭔 헛소리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십년이나 지난 지금 다시 이 말을 떠올리게 된다. 수동적 독자가 능동적 독자가 될 때라.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영어로 연구를 '다시 찾기(re-search)'라고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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