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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쟁점 1: 독소조항

우균 2011. 11. 21. 13:21
한미 FTA가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집권여당은 날치기 통과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더라도 강행하겠다고 하고 야당은 결사 항전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 도대체 FTA가 뭐길래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일까요? 어떤 쟁점이 있길래 이렇게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일이 일어날까요? 궁금하여 주위 분들에게 물어보았지만 10명 중 8명은 무엇이 쟁점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두 분 정도는 쟁점을 파악하고 계셨지만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시더군요. 제 간단한 실험이긴 하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반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FTA 핵심은 간단합니다. 자유 무역 협정, 즉 물건을 자유롭게 사고 팔게 하자는 것입니다. 관세 등으로 보호되어 있는 무역 장벽을 없애고 시장을 확대하자는 것이지요. 개념 자체는 나쁠 것이 없습니다. 두 나라 기업이 모두 튼실하니 보호장구 없이 한번 붙어 보자는 것이지요. 요즘 한판 붙고 있는 삼성과 애플을 생각해 보면 쉽게 상상이 갑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를 계기로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왜 이런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이미 칠레와 유럽과는 FTA를 체결한 바 있는데, 왜 유독 한미 FTA에 대해서는 거센 반발이 있을까요? 그들이 좌파라서 그런 것입니까? 국익을 반대하는 암적 존재들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한미 FTA에 들어 있는 여러 독소조항들 때문입니다. 잘 알려져 있는 독소조항으로는 역진방지(래칫, ratchet), 네거티브 개방, 투자자 국가 제소권(ISD) 등이 있습니다. 이중 ISD라는 것은 아주 무시무시한 조항입니다.

ISD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지방자치단체(지자체)를 국가라고 하고 여기에서 돈 벌고 있는 회사를 투자자라고 합시다. 국가는 독립적인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지자체를 국가라고 생각해도 설명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에서 택배업을 하고 있는 페닥스가 있다고 합시다. 서울시는 교통 혼잡을 해소하기 위해 '차 없는 날'을 선포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매달 첫 번째 토요일에는 대중교통 수단 외에는 어떤 차도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고 이를 시행합니다. 그리고 다른 지자체(타 국가)에도 협조를 요청합니다.

그런데 페닥스는 이 규정으로 인해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하기에 이릅니다. '차 없는 날'에는 택배 차량을 가동시킬 수 없고, 따라서 서울시 규정 때문에 연간 30억에 이르는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합니다. 더구나 페닥스는 서울시 기업도 아닙니다. 미국의 올됵이라는 도시(다른 지자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지사일뿐입니다. 그러므로 서울 시민들의 편의는 자신들이 고려할 대상이 아니지요. 그래서 ISD에 따라 서울시를 고소하기에 이릅니다.

뒤늦게 서울시는 ISD 조항을 없애기 위해 FTA를 재검토하기로 합니다. 여러 똑똑한 분들이 모여서 수정안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이 들어간 새로운 안을 다시 토론하자고 제의합니다. 그러나 역진방지라는 조항 때문에 새로운 안은 거론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미 협상이 끝난 안은 다시 재론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역진방지' 조항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서울 시민들의 삶은 피폐해져 가고, 서울 시민들의 삶을 담보로 페닥스는 번창하게 됩니다. 페닥스는 이제 새로운 사업 영역, 상품 배달업까지 사업 영역을 넓힙니다. 상품 배달업은 퀵서비스와 비슷하지만 배달 의뢰 고객이 일반인이 아니라 사업자라는 측면에서 다릅니다. 마켓에서 산 상품을 배달해 주거나, 치킨, 피자 등 음식물을 배달해 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사업이지요.

그런데 이 분야에서도 페닥스는 불만을 토로합니다. 이번에는 마트나 요식업체에서 상품을 산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무료 배달 정책이 자신들의 사업 이익을 방해한다는 거지요. 그래서 또 ISD에 따라 소송을 준비합니다. 서울시가 상품의 무료 배달을 법규로 허용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지요. 서울시는 이의를 제기합니다. 상품 배달업은 처음 FTA를 체결할 때 고려했던 사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ISD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요.

그러나 네거티브 개방 규정이 있었습니다. 네거티브 개방이란 서비스 영역에 대한 개방은 협상 당시 고려했던 분야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포괄적으로 FTA 규정이 적용된다는 조항입니다. 즉 새로 만들어진 '상품 배달업' 서비스에도 FTA 규정이 그대로 적용되어, ISD, 역진방지가 적용된다는 것이지요. 서울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비용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이런 소비자의 불편은 페닥스의 고려 대상이 아니지요. 자사의 이익이 우선할 뿐입니다.

FTA 독소 조항이 왜 문제인지 조금 느낌이 올까요? 그런데 이런 FTA를 국회에서 여당이 강행처리한다고 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래도 FTA가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국민들에게 알리고 무엇이 잘못된 생각인지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좋은 FTA라면 왜 어떤 논의도 거치지 않고, 왜 이렇게 서둘러 처리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심지어 일부 여당 국회의원까지도 반대하는 것 아닙니까? 정말 착잡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없어질까 두렵습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그 때 아버지는 무엇을 했냐고 물을까봐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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