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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직업이 직업인지라 논문을 읽다 보면 정말 눈에 거슬리는 글을 많이 보게 된다. 오늘 본 이상한 글은 바로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실행이 가능하다. 이런 문장의 아류로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들 수 있다. 효율 향상이 가능하다. 효율적 수행이 가능하다. 효과적인 제작이 가능하다. 이런 문장은 "It is possible that ..."이라는 영어 표현을 그대로 직역하는 버릇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글로 쓸 때에는 그냥 간단히 "~할 수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행할 수 있다.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효과적으로 제작할 수 있다. 맨 끝 문장은 제작이라는 말 대신에 "만들다"를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다. 누군가 주장한 것처럼, ..
쉼표는 말 그대로 쉬어가는 위치를 나타내기 위한 기호다. 그런데 쉼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있는데, 꾸며주는 대상을 쉼표가 바꿀 수 있다. 다음 문구를 보자. 작은 신의 아이들 예전에 이런 제목이 붙은 영화가 있었다. 난 그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만약 그 제목이 위 문구대로였다면 '작은'이란 단어는 '신'을 꾸며 준다. 따라서 '신'이 작다는 의미다. 반면 이 글 제목처럼 다음과 같이 문구를 썼다면 작은, 신의 아이들 '작은'이란 수식어구 다음에 한 박자 쉬기 때문에, 이 틈에 '신의'라는 문구는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작은'이란 단어는 '아이들'을 꾸며 준다. 쉼표, 아주 작은 기호지만 때론 큰 역할을 한다.
우리글로 글을 쓸 때 묶음표는 앞 단어를 더 자세히 부연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따라서 이 글 제목처럼 묶음표를 앞 단어에 붙여 써야 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쓰면 안 된다. 묶음표 (괄호) 사용법 대신 다음과 같이 써야 한다. 묶음표(괄호) 사용법 사람들이 이것을 혼동하는 이유는 Microsoft 워드 때문인 것 같다. 워드를 비롯한 MS 오피스 프로그램은 제멋대로 괄호를 앞 단어와 떼어 버린다. 또 다른 이유로는 영어권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영문 글에서 쓰는 방식을 그래도 쓰기 때문인 것 같다. 영어로 글을 쓸 때에 묶음표는 생략해도 되는 어구를 감싸는 용도로 사용한다. 따라서 묶음표의 앞과 뒤를 모두 떼어서 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써야 한다. The usage of parentheses (r..
'조엘 온 소프트웨어'처럼 꽤 유명한 책에도 '기반하다'라는 말을 꽤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영어의 'based on'을 간단하게 번역하려고 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한때 나도 모르고 자랑스럽게 '기반하다'란 단어를 쓰곤 했었다. 그런데 '~하다'란 말은 원래 동작을 나타내는 명사에 붙여 써야 한다. '공부하다', '등산하다'처럼 말이다. 아무 명사에나 붙이면 매우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 물통하다. 달력하다. 그런데 '기반하다'도 마찬가지다. 올바르게 쓰려면 다음과 같이 풀어 써야 한다.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조엘 온 소프트웨어' 역자님, 심기가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 여기 쓴 글은 제 실수를 바탕으로 쓰고 싶었지만, 책의 유명세 덕 좀 볼까하고 이렇게 썼..
나도 할 수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뜻도 맞고 맞춤법에도 맞다. 그런데 다음 글은 어떨까? 나도 공부 할 수 있다. 뜻은 맞지만, 맞춤법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하다'는 목적어를 수반하지 않을 경우에는 붙여써야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써야 한다. 나도 공부할 수 있다. 물론 다음과 같이 써도 된다. 나도 공부를 할 수 있다. 왜 이런 실수를 간혹 저지르는 걸까? 짐작건대, '할 수 있다'에서 '할'도 '수'와 같은 의존명사라고 착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오해하지 말자. 이제 나도 띄어쓰기할 수 있다.
유명한 노래 중에 '나에게로 초대'---'나에게로의 초대'인가?---라는 것이 있다. 나도 좋아하는 노랜데, 이 노래가 맘에 들어 노래방에서 불러본 적도 있다(너무 키가 높아서 노래하는 나나, 듣는 사람들이나 모두 괴로웠던 경험이었음). 그런데 이 노래 제목에 사용된 '에게로'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정작 이 노래 가사에도 '나에게로'라는 말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혹시 일본말의 영향이 아닐까 싶어 책을 뒤져 봤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다. 그냥 '나에게 초대', 아니면 '내게 초대'라고 쓴다면 시적 감각이 떨어지는 걸까?
그랬을 뿐이다. 너뿐이다. '뿐이다'를 앞 단어와 떼어야 하는가, 붙여야 하는가? 위 두 예 중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원래 나는 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뿐'이란 것을 의존 명사(독립적인 뜻을 지니지 못하고 상황(context)이 주어져야 뜻을 갖게 되는 명사)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존 명사로 본다면 반드시 앞 단어와 떼어 써야 한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뿐'은 조사 역할도 한다고 되어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체언이나 부사어 뒤에 붙어) 오직 그것만이고 더는 없음을 나타내는 보조사'라고 되어 있다. 조사라면 반드시 앞에 붙여야 한다. 그래서 위 두 예는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럼, 어떤 경우에 '뿐'이 의존 명사로 사용되는 것일까? 역시 같은 국어사전에 따르면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