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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나도 할 수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뜻도 맞고 맞춤법에도 맞다. 그런데 다음 글은 어떨까? 나도 공부 할 수 있다. 뜻은 맞지만, 맞춤법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하다'는 목적어를 수반하지 않을 경우에는 붙여써야 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써야 한다. 나도 공부할 수 있다. 물론 다음과 같이 써도 된다. 나도 공부를 할 수 있다. 왜 이런 실수를 간혹 저지르는 걸까? 짐작건대, '할 수 있다'에서 '할'도 '수'와 같은 의존명사라고 착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오해하지 말자. 이제 나도 띄어쓰기할 수 있다.
유명한 노래 중에 '나에게로 초대'---'나에게로의 초대'인가?---라는 것이 있다. 나도 좋아하는 노랜데, 이 노래가 맘에 들어 노래방에서 불러본 적도 있다(너무 키가 높아서 노래하는 나나, 듣는 사람들이나 모두 괴로웠던 경험이었음). 그런데 이 노래 제목에 사용된 '에게로'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정작 이 노래 가사에도 '나에게로'라는 말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혹시 일본말의 영향이 아닐까 싶어 책을 뒤져 봤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다. 그냥 '나에게 초대', 아니면 '내게 초대'라고 쓴다면 시적 감각이 떨어지는 걸까?
그랬을 뿐이다. 너뿐이다. '뿐이다'를 앞 단어와 떼어야 하는가, 붙여야 하는가? 위 두 예 중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원래 나는 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뿐'이란 것을 의존 명사(독립적인 뜻을 지니지 못하고 상황(context)이 주어져야 뜻을 갖게 되는 명사)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의존 명사로 본다면 반드시 앞 단어와 떼어 써야 한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뿐'은 조사 역할도 한다고 되어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체언이나 부사어 뒤에 붙어) 오직 그것만이고 더는 없음을 나타내는 보조사'라고 되어 있다. 조사라면 반드시 앞에 붙여야 한다. 그래서 위 두 예는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럼, 어떤 경우에 '뿐'이 의존 명사로 사용되는 것일까? 역시 같은 국어사전에 따르면 '~했을 뿐이다..
'~하다'로 끝나는 동사를 쓸 때, '하다'를 떼어 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예를 들어서 '공부하다'를 '공부 하다'로 잘못 쓰는 경우다. 이는 '공부'를 목적어로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목적격 조사가 별도로 붙는다면 그렇게 써야 하겠지만(예컨대 '공부를 하다') 목적격 조사가 없는 경우에는 붙여 써야 한다. 다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생각 하다 -> 생각하다 작업 하다 -> 작업하다 청소 하다 -> 청소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내가 살던 고향'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은 너무 유명한 얘기다. 관형격 조사 '의'를 제대로 쓰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관형격 조사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한 것 같은데, 관형어란 다른 명사를 꾸며주도록 만들어 주기 위한 낱말을 말한다. '개'가 '소리'를 꾸며주도록 할 때 '개의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의'를 관형격 조사라고 한다. 문제는 관형격 조사 '의'가 일본어 '노'로 인해서 의미가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말에서는 원래 관형격 조사 '의'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대부분 생략되었다고 한다(이오덕, 우리글 바로쓰기). 그런데 일본어 영향으로---40년이었으니 영향이 없었다면 더 이상하겠지---쓸데없이 '의'를 덧붙이게 되었다는 말이다. '의'에 관한 습관은 정..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 '~에 있어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셨다. 증명 과정을 기술하실 때, 이런 표현을 자주 쓰시곤 하였는데, 이것이 어색한 표현이라는 것을 꽤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이런 표현은 주로 글 쓸 때 사용하는데, 간단한 사실을 엄청 심각한 것처럼 느릿느릿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내게 있어서 너란 존재는 매우 소중해'라고 누군가 말했다고 하자. 무슨 문학적인 표현처럼 느껴지지만, '내게 너는 매우 소중해'라는 말을 그냥 길게 늘여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에 있어서'는 그냥 '~에게', '~할 때'로 바꿔 쓰는 것이 편하다. 다른 예를 적으면 다음과 같다. 자원 선택에 있어 보다 나은 방법을 -> 자원을 선택할 때, 더 나은 방법을 그 동안 이런 사실을 모르고 쓴 것을 생각..
어떤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 대상으로 변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되다'는 피동(어떤 행위를 당함) 조동사로서 사용되기도 하는데, 바로 이 문장에 포함된 '사용되다'의 '되다'가 그런 경우다. 이 때, 간혹 '뭐가 되다'는 형태, 예컨대 '사용이 된다'는 형태로 글을 쓰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때는 '사용되다'로 쓰는 것이 옳은 방향인 듯 싶다. 비슷한 예를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개발이 되다 -> 개발되다 제공이 되다 -> 제공되다 배제가 되다 -> 배제되다 피동보다는 능동 형태가 더 이해하기 쉬우므로 가능하다면 능동 형태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이와 유사한 형태로, '뭐를 하다'와 같은 유형을 들 수 있다. 사실 이 경우에도 '뭐하다'로 쓰는 편이 더 간결한데도 그냥 습관적으로 '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