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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페이소스'라는 말을 듣고 '샐러드 소스'나 '스테이크 소스'를 떠올린 사람이 한둘은 있을 것이다. 이 말은 주로 '평론'이라는 제목을 꿰찬 글에 많이 나타난다. 내가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 때였던 것 같다. 어떤 영화에 대한 평론이었던 것 같은데, 매우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지만 바로 이 단어 때문에 기분을 망쳐 버렸다. 무슨 뜻인지 모르고 한 동안 지내다가 사전을 찾아 보았다. 'pathos'. 이런 망할. 원어라도 밝혀 놓든지... 당시에는 '로고스와 파토스(logos and pathos)'라는 찻집도 유행할 때였다. 어쨌거나 여기서는 단어의 뜻을 설명하는 곳이니까 그 뜻을 적어야 겠지. PATHOS: 애수, 슬픔, 비애, 열정, ... "짙은 페이소스가 느껴진다."라는 말 대신 "짙은 슬픔..
직업이 직업인지라 논문을 읽다 보면 정말 눈에 거슬리는 글을 많이 보게 된다. 오늘 본 이상한 글은 바로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실행이 가능하다. 이런 문장의 아류로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들 수 있다. 효율 향상이 가능하다. 효율적 수행이 가능하다. 효과적인 제작이 가능하다. 이런 문장은 "It is possible that ..."이라는 영어 표현을 그대로 직역하는 버릇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글로 쓸 때에는 그냥 간단히 "~할 수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행할 수 있다.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효과적으로 제작할 수 있다. 맨 끝 문장은 제작이라는 말 대신에 "만들다"를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다. 누군가 주장한 것처럼, ..
'조엘 온 소프트웨어'처럼 꽤 유명한 책에도 '기반하다'라는 말을 꽤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영어의 'based on'을 간단하게 번역하려고 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한때 나도 모르고 자랑스럽게 '기반하다'란 단어를 쓰곤 했었다. 그런데 '~하다'란 말은 원래 동작을 나타내는 명사에 붙여 써야 한다. '공부하다', '등산하다'처럼 말이다. 아무 명사에나 붙이면 매우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 물통하다. 달력하다. 그런데 '기반하다'도 마찬가지다. 올바르게 쓰려면 다음과 같이 풀어 써야 한다.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조엘 온 소프트웨어' 역자님, 심기가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 여기 쓴 글은 제 실수를 바탕으로 쓰고 싶었지만, 책의 유명세 덕 좀 볼까하고 이렇게 썼..
유명한 노래 중에 '나에게로 초대'---'나에게로의 초대'인가?---라는 것이 있다. 나도 좋아하는 노랜데, 이 노래가 맘에 들어 노래방에서 불러본 적도 있다(너무 키가 높아서 노래하는 나나, 듣는 사람들이나 모두 괴로웠던 경험이었음). 그런데 이 노래 제목에 사용된 '에게로'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정작 이 노래 가사에도 '나에게로'라는 말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혹시 일본말의 영향이 아닐까 싶어 책을 뒤져 봤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다. 그냥 '나에게 초대', 아니면 '내게 초대'라고 쓴다면 시적 감각이 떨어지는 걸까?
'나의 살던 고향'은 '내가 살던 고향'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은 너무 유명한 얘기다. 관형격 조사 '의'를 제대로 쓰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관형격 조사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한 것 같은데, 관형어란 다른 명사를 꾸며주도록 만들어 주기 위한 낱말을 말한다. '개'가 '소리'를 꾸며주도록 할 때 '개의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의'를 관형격 조사라고 한다. 문제는 관형격 조사 '의'가 일본어 '노'로 인해서 의미가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말에서는 원래 관형격 조사 '의'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대부분 생략되었다고 한다(이오덕, 우리글 바로쓰기). 그런데 일본어 영향으로---40년이었으니 영향이 없었다면 더 이상하겠지---쓸데없이 '의'를 덧붙이게 되었다는 말이다. '의'에 관한 습관은 정..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 '~에 있어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셨다. 증명 과정을 기술하실 때, 이런 표현을 자주 쓰시곤 하였는데, 이것이 어색한 표현이라는 것을 꽤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이런 표현은 주로 글 쓸 때 사용하는데, 간단한 사실을 엄청 심각한 것처럼 느릿느릿 표현할 때 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내게 있어서 너란 존재는 매우 소중해'라고 누군가 말했다고 하자. 무슨 문학적인 표현처럼 느껴지지만, '내게 너는 매우 소중해'라는 말을 그냥 길게 늘여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에 있어서'는 그냥 '~에게', '~할 때'로 바꿔 쓰는 것이 편하다. 다른 예를 적으면 다음과 같다. 자원 선택에 있어 보다 나은 방법을 -> 자원을 선택할 때, 더 나은 방법을 그 동안 이런 사실을 모르고 쓴 것을 생각..
어떤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 대상으로 변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되다'는 피동(어떤 행위를 당함) 조동사로서 사용되기도 하는데, 바로 이 문장에 포함된 '사용되다'의 '되다'가 그런 경우다. 이 때, 간혹 '뭐가 되다'는 형태, 예컨대 '사용이 된다'는 형태로 글을 쓰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때는 '사용되다'로 쓰는 것이 옳은 방향인 듯 싶다. 비슷한 예를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개발이 되다 -> 개발되다 제공이 되다 -> 제공되다 배제가 되다 -> 배제되다 피동보다는 능동 형태가 더 이해하기 쉬우므로 가능하다면 능동 형태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이와 유사한 형태로, '뭐를 하다'와 같은 유형을 들 수 있다. 사실 이 경우에도 '뭐하다'로 쓰는 편이 더 간결한데도 그냥 습관적으로 '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