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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뉴스 그룹에서 퍼온 글. 어느 날 상관선사가 제자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있던 선사는 느닷없이 제자에게 물었다. "자네는 소를 보았는가?" 제자가 대답했다. "네 보았습니다." 선사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자네는 소의 왼쪽 뿔을 보았는가? 오른쪽 뿔을 보았는가?" 제자는 대답을 못하고 입을 닫고 말았다. 그러자 선사가 말하였다. "보는 것에는 좌우가 없는 법이라네." 이것도 우스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끔은 세상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살 필요가 있다. 산책하다가 우리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곳이 없는 산책은 방랑이며 돌아갈 곳을 모르는 산책은 방황이다. 오늘 하루는 산책해 보자. 마음이 아마 조금 가벼워 질 것이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무덤덤하게 하루를 보내는 일도 있지만, 느낌이 있는 하루도 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이다. 금강공원을 지나 오는데, 주차장에서 공원으로 이어지는 육교에서 어떤 할머니가 현수막을 들고 씨름하고 계셨다. '할머니가 현수막을 철거하실 리도 없고...' 이상하게 생각하며 지나가고 있는데, 할머니가 손짓하여 부르시는 것이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육교 위에 설치되어 있던 현수막 한 쪽 끝이 떨어져서 아래 차들이 피해가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 어제 비바람 때문에 현수막이 떨어졌나 보다. 그래서 할머니 혼자 그것을 들어 올리시느라 고생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옆에서 거들어 드렸다. 한쪽 끝을 그냥 묶었는데, 할머니 말씀 "풀어지지 않게 꽉 묶어." 그래서 한 번 더 묶었다. 나는 거들어 드..
전공 강의를 하다 보면 마치 신들린 듯이 강의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강의하는 주체는 분명 물리적으로 '나'지만,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강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 그런 경우가 있다. 이런 강의를 할 때면, 두 가지 센서가 마비된다. 하나는 시간 감각이며 다른 하나는 평형 감각이다. 시간 감각이 마비된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에 둔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분명 한 시간이 흘렀지만 마치 십여분 정도가 흐른 느낌 같은 것. 평형 감각이 마비된다는 것은 내가 말하는 사람이고 학생들이 듣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본디 내가 강의하러 왔고 학생들은 지식을 들으러 왔지만, 강의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나도 학생이 된 것 같은 느낌..
어딘가에서 본 글을 다시 적는다. 꿈이 있는 사람은 목표가 있고 목표가 있는 사람은 실천을 한다. 실천하는 사람은 실적을 얻게 되며 실적이 있으면 반성을 하게 된다. 반성을 하면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우리는 원래 꿈이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꿈을 잊고 살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차근 차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근 한 달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여기에 적기 힘들만큼 바쁘고 심란했던 한 달이었지만, 이제 모두 지나간 풍경처럼 아른하게 느껴질 뿐이다. 우습게도 몸을 힘들게 했던 사건과 마음을 힘들게 했던 사건이 다른 사건이다. 이젠 모두 지나간 일, 밝은 오월을 준비해야 한다. 머리속에서 기억을 조각모음(defragmentation)하고 담담하게 새 날을 기다려야 한다.
누구에게나 눈은 있겠지만 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누구에게나 입은 있겠지만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누구에게나 귀는 있겠지만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누구에게나 머리는 있겠지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두 손을 가진 사람은 많겠지만 그 손으로 노력하며 사는 사람은 드물다. 두 다리를 가진 사람은 많겠지만 다시 일어날 용기를 지닌 사람은 드물다. 누구에게나 가슴은 있겠지만 그 안에 열정을 품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누구나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지난 주 등교하던 길에 문득 들리는 소리. "친구들과 나누어 먹어." 돌아 보니 유치원에 나가는 아이에게 엄마가 당부하는 소리다. 아마 가방에 먹을 것을 챙겨 준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희망은 "젊은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엄마들이 함께 사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때, 그 아이들이 커서 함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너 혼자만 챙겨 먹어"가 아니라 "친구들과 나누어 먹어"였다.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살아 가는 것'이다. 뭐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논리가 사방에 널려 있는 요즘이다.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 없이 경제만 살면 되고, 자식 놈이 뽕을 하든 뭐하든 상관 없이 대학만 가면 된다는 식이다. 얼마 전 아는 분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말이 경제..